다섯번째 계절

반응형

아침부터 비가 오는 금요일입니다.

책 읽다가 비오는날 읽으면 좋은 글을 모아봤어요.

비오는 풍경 이미지에 시를 적어봤지요~~

이런 날에는 드라마 몰아보던 거 잠깐 멈추고 음악 들으면서 시 한편 읽는 것도 참 좋네요 :D




비오는 날은 그대가 그립다



허전한 마음 속으로

빗물이 걸어들어와

술잔처럼 채워진다


시간이 흐를수록

별빛과 만나는

사소한 일조차

아득하게 멀어지고


그리움의 색깔도

조금씩 바래지는 삶의 긴 행로

유리창을 적시는

빗소리에 쉽게 젖어드는데


내 가슴에 지워지지 않은

사랑의 흉터 하나 남는다 해도

오늘처럼

비오는 날은

마음 속의 그대가 그립다


<비오는 날은 그대가 그립다_허은주>




비오는 날에는



비 오는 날에는 비가 된다.

어느 길거리 우산을 받쳐든 그대 위로 뛰어 내려

옷자락 끝을 적시며 함께 걷고 싶다.


비 오는 날에는 빗물이 된다.

그 어느 곳 그대 집 위로 떨어져

처마끝을 타고 내려

땅속으로 파고 들어

어느 바람 좋고 햇살 좋은 날

이름 모를 꽃을 피워

그대의 눈길을 잠시 머물게 하고 싶다.


비 오는 날에는 그대인냥 여기며

그냥 내리는 빗방울을 바라다만 본다.


<비오는 날에는_이광희>






비는 가장 큰 권위를 가지고, 가장 좋은 기회를 줍니다

비는 해를 가리고 하늘을 가리고 세상 사람의 눈을 가립니다

그러나 비는 번개와 무지개를 가리지 않습니다


나는 번개가 되어 무지개를 타고,

당신에게 가서 사랑의 팔에 감기고자 합니다

비 오는 날 가람히 가서 당신의 침묵을 가져온대도

당신의 주인은 알 수가 없습니다


만일 당신이 비오는 날에 오신다면

나는 연입으로 웃옷을 지어서 보내겠습니다

당신이 비 오는 날에 연잎옷을 입고 오시면

이 세상에는 알 사람이 없습니다


당신이 비 가운대로 가만히 오셔서 나의 눈물을 가져가신대도

영원한 비밀이 될 것입니다

비는 가장 큰 권위를 가지고, 가장 좋은 기회를 줍니다


<비_한용운>








굵은 비 내리고


굵은 비 내리고

나는 먼 곳을 생각하다가

내리는 비를 마음으로만 맞다가

칼국수 생각이 났지요

아시죠, 당신, 내 어설픈 솜씨를

감자와 호박은 너무 익어 무르고

칼국수는 덜 익어 단단하고

그래서 나는 더욱 오래 끓여야 했습니다

기억하나요, 당신

당신을 향해 마음 끓이던 날

우리는 서로 너무 익었거나 덜 익었던 그때

당신의 안에서 퍼져가던 내 마음

칼국수처럼 굵은 비, 내리고

나는 양푼 같은 방 안에서

조용히 퍼져갑니다


<굵은 비 내리고 _장만호>




그렇게 속삭이다가



저 빗물 따라 흘러가 봤으면

빗방울에 젖은 작은 벚꽃 잎이

그렇게 속삭이다가, 시멘트 보도

블록에 엉겨 붙고 말았다 시멘트

보도 블록에 연한 생채기가 났다

그렇게 작은 벚꽃 잎 때문에 시멘트

보도블록이 아플 줄 알게 되었다

저 빗물 따라 흘러 가봤으면

비 그치고 햇빛 날 떄까지 작은

벚꽃 잎은 그렇게 중얼거렸다

고운 상처를 알게 된 보도 블록에서

낮은 신음소리 새어나올 때까지


<그렇게 속삭이다가_이성복>




눈물부처


비 내리네 이 저녁을

빈 깡통 두드리며

우리집 단칸방에 깡통 거지 앉아 있네

빗물소리 한없이 받아주는

눈물 거지 앉아 있네


<눈물부처_서정춘>




늙은 비의 노래


나이 들면 사는 게 쉬어지는 줄 알았는데

찬비 내리는 낮은 하늘이 나를 적시고

한기에 떠는 나뭇잎 되어 나를 흔드네


여기가 희미한 지형의 어디쯤일까

사선으로 내리는 비 사방의 시야를 막고

헐벗고 젖은 속세에 말 두 마리 사서

열리지 않는 입 맞춘 채 함께 잠들려 하네


눈치 빠른 새들은 몇 시쯤 기절에서 깨어나

시간이 지나가 버린 곳으로 날아갈 것인가

내일도 모레도 없고 늙은 비의 어깨만 보이네


세월이 화살 되어 지나갈 때 물었어야지

빗속에 혼자 남은 내 절망이 힘들어할 때

두꺼운 밤은 내 풋잠을 진정시켜 주었고

나는 모든 것을 놓아버리고 편안해졌다


나중에 사람들은 다 그렇게 사는 것이라고

안개가 된 늙은 비가 어깨 두드려 주었지만

아, 오늘 다시 우리 가슴을 설레게 하는

빗속에 섞여 내리는 당신의 지극한 눈빛


<늙은 비의 노래_마종기>







거리에 비 내리듯



거리에 비 내리듯

내 마음에 눈물 내리네.

가슴 속 깊이 스며드는

이 슬픔은 무엇이런가?


대지 위에, 지붕 위에 내리는

속삭이는 비 소리

울적한 이 가슴을 위한

아, 비의 노래 소리여!


낙담한 이 가슴에

까닭 없이 눈물 흐르네.

웬일일까! 배반도 없었는데?

이 슬픔은 까닭이 없네.


사람도 미움도 없이

내 마음 왜 이다지 아픈 것인지,

이유조차 모르는 일이

가장 괴로운 아픔인 것을!


<거리에 비 내리듯_폴 베를레느>




마른 잎 두드리는 빗방울 하나



마른 잎 두드리는 빗방울 하나.

느릿느릿, 오래도록, 그 빗방울은 늘 한 장소에서

두드리고 다시 또 일념으로 두드린다.


초췌한 이 마음을 두드리는 그대 눈물 한 방울

느릿느릿, 오래도록, 그 괴로움은 늘 한 장소에서

시간처럼 집요하게 소리 울린다.


하지만 그 잎과 마음에는

밑빠진 공허가 안에 들어 있기에,

나뭇잎은 빗방울을 끝없이 받아내고 견딜 것이다.

미움도 송곳같은 그대를

끝없이 받아내고 견딜 것이다.


<마른 잎 두드리는 빗방울 하나_프란시스 잠>




바하의 비



비오는 날에는 아무래도 바하의 미뉴엣이 제일이다

촘촘히 그려진 음표 중에 하나라도 놓치면 나의 연주는 망친다


한평생 연습만 하다 끝나버릴지도 모르는 난해하기만 한 생의 음표들.

몸과 마음을 다 던져 연습한 한 곡조차 능숙하지 못한 손놀림.

마음에서는 검은 구름이 스믈스믈 올라온다.


도도도 레레레 미미미... 더 이상은 보이지 않는다.

악보들은 점점 흘러내려 흔적도 없이 흐믈흐믈 사라져 머린다.


비는 박자도 맞지 않는 리듬을 창문에 대고 두들겨 댄다.

불협화음만 가득한 이 연주,


몇 시간이고 피아노 앞에 앉아 있다.

바하의 미뉴엣은 오늘도 미완성이다.


<바하의 비_최가림>



같이 읽으면 좋은 글 ▼

비오는날 좋은 글 감성글귀 이미지 모음 :D

비오는날 좋은글 모음 / 나희덕의 비 오는 날에.. 외 4개


반응형

이 글을 공유합시다

facebook twitter googleplus kakaostory nav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