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날에 - 나희덕
내 우산살이 너를 찌른다면.
미안하다.
비닐 우산이여.
나의 우산은 팽팽하고
단단한 강철의 부리를 지니고 있어
비 오는 날에도 걱정이 없었거니
이제는 걱정이 된다.
빗속을 함께 걸어가면서 행여
댓살 몇 개가 엉성하게 받치고 선
네 약한 푸른 살을 찢게 될까 두럽구나
나의 단단함이 가시가 되고
나의 팽팽함이 너를 주눅들게 한다면
차라리 이 우산을 접어 두겠다.
몸이 젖으면 어떠랴
만물이 눅눅한 슬픔에 녹고 있는데
빗발이 드세기로
우리의 살끼리 부대낌만 하랴
비를 나누어 맞는 기쁨.
젖은 어깨에 손을 얹어
따뜻한 체온이 되어줄 수도 있는
이 비 오는 날에
내 손에 들린 우산이 무겁기만 하다.
가슴에 내리는 비 - 윤보영
비가 내리는군요.
내리는 비에
그리움이 젖을까봐
마음의 우산을 준비했습니다.
보고 싶은 그대.
오늘같이
비가 내리는 날은
그대 찾아 나섭니다.
그립다 못해
내 마음에도 주룩주룩 비가 내립니다.
내리는 비에는
옷이 젖지만
쏟아지는 그리움에는
마음이 젖는군요.
벗을 수도 없고
말릴 수도 없고.
비 내리는 날은
하늘이 어둡습니다.
그러나 마음을 열면
맑은 하늘이 보입니다.
그 하늘
당신이니까요.
빗물에 하루를 지우고
그 자리에
그대 생각 넣을 수 있어
비 오는 날 저녁을 좋아합니다.
그리움 담고 사는 나는.
늦은 밤인데도
정신이 더 맑아지는 것을 보면
그대 생각이 비처럼
내 마음을 씻어주고 있나봅니다.
비가 내립니다.
내 마음에 빗물을 담아
촉촉한 가슴이 되면
꽃씨를 뿌리렵니다.
그 꽃씨 당신입니다.
비가 오면
우산으로 그리움을 가리고
바람 불 때면
가슴으로 당신을 덮습니다.
비가 내립니다.
빗줄기 이어 매고
그네 타듯 출렁이는 그리움
창밖을 보며
그대 생각하는 아침입니다.
내리는 비는
우산으로 마저 가릴 수 있지만
쏟아지는 그리움은
막을 수가 없군요.
폭우로 쏟아지니까요.
비가 내립니다
누군가가
빗속을 달려와
부를 것 같은 설레임
내 안의 그대였군요.
비 오는 오후 - 탁명주
한종일
비는 텅 비어지도록 내리고
습기 진 창유리 속에 갇힌
내 마음은
먼 허공 속을 머문다
빗물을 긋는 행인들 사이
텅 빈 오후와 함께
기다림이란 낱말 하나
동그마니 남아 있다
비가 내린다 - 송정숙
비가 내린다
누군가의 가슴에
눈물이 되기 위해서
비가 내린다
잡지 못하고
놓아버린
이별이 아쉬워
비가 내린다
오늘은 접어두고
내일 열리는
아침을 위해서
비 내리는 밤 - 박태강
콩알 같은 빗방울이 때리면
인적 끊긴 가로등
외로워 눈물 흘리고
차에서 내리는 사람
우산에 몸 숨긴 사람들
종종 걸음으로 갈 길이 바쁘다
비 내리는 모습이 아름다워도
폭우처럼 내리는 비
두려움을 자아내고
추적추적 내리는 비
지난 추억 몰고 와
떠난 님 그리워 가슴 울렁인다
빗속의 님
기다린 지난날
그래서 행복하였노라고
언제 뵈올지 모르는 님
생각에
오늘도 나는 빗속을 거닐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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