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번째 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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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이 오면 / 이해인


움직이지 않아도

태양이 우리를 못 견디게 만드는

여름이 오면, 친구야

우리도 서로 더욱 뜨겁게 사랑하며

기쁨으로 타오르는

작은 햇덩이가 되자고 했지?


산에 오르지 않아도 

신록이 숲이 마음에 들어차는 

여름이 오면, 친구야 

우리도 묵묵히 기도하며 

이웃에게 그늘을 드리워주는 

한 그루 나무가 되자고 했지?


​바다에 나가지 않아도 

파도 소리가 마음을 흔드는 

여름이 오면, 친구야 

우리도 탁 트인 희망과 용서로 

매일을 출렁이는 작은 바다가 되자고 했지?


여름을 좋아해서 여름을 닮아가는

나의 초록빛 친구야

멀리 떠나지 않고서도 삶을 즐기는 법을

너는 알고 있구나

너의 싱싱한 기쁨으로

나를 더욱 살고 싶게 만드는

그윽한 눈빛의 고마운 친구야.





창공 / 윤동주


그 여름날 

열정의 포플러는 

오려는 창공의 푸른 젖가슴을 

어루만지려 

팔을 펼쳐 흔들거렸다. 

끓는 태양 그늘 좁다란 지점에서 

천막(天幕) 같은 하늘 밑에서 

떠들던, 소나기 

그리고 번개를, 

춤추던 구름을 이끌고 

남방(南方)으로 도망하고,

높다랗게 창공은 한 폭으로 

가지 위에 퍼지고 

둥근달과 기러기를 불러왔다.

푸르른 어린 마음이 이상(理想)에 타고

그의 동경(憧憬)의 날 가을에 

조락(凋落)의 눈물을 비웃다.





수련 / 정호승


물은 꽃의 눈물인가 

꽃은 물의 눈물인가 

물은 꽃을 떠나고 싶어도 떠나지 못하고 

꽃은 물을 떠나고 싶어도 떠나지 못한다 

새는 나뭇가지를 떠나고 싶어도 떠나지 못하고 

눈물은 인간을 떠나고 싶어도 떠나지 못한다 





산림(山林) / 윤동주


시계가 자근자근 가슴을 때려 

불안한 마음을 산림(山林)이 부른다.


​천년 오래인 연륜에 찌들은 유암(幽暗) 한 

산림(山林)이, 고달픈 한 몸을 포옹(抱擁) 할 

인연을 가졌나보다.


​산림의 검은 파동(波動) 위로부터

어둠은 어린 가슴을 짓밟고


​이파리를 흔드는 저녁 바람이

솨ㅡ공포에 떨게 한다.


​멀리 첫여름의 개구리 재질댐에 

흘러간 마을의 과거는 아질타.


​나무틈으로 반짝이는 별만이 

새날의 희망으로 나를 이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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