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번째 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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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이외수

여름이 문을 닫을 때까지

나는 바다에 가지 못했다

흐린 날에는 

홀로 목로주점에 앉아

비를 기다리며 술을 마셨다

막상 바다로 간다해도

나는 아직 바람의 잠언을 알아듣지 못한다

바다는

허무의 무덤이다 

진실은 아름답지만 

왜 언제나 해명되지 않은 채로 

상처를 남기는지 

바다는 말해 주지 않는다

  

빌어먹을 낭만이여 

한 잔의 술이 한잔의 하늘이 되는 줄을 

나는 몰랐다 

젊은 날에는

가끔씩 술잔 속에 파도가 일어서고 

나는 어두운 골목 

똥물까지 토한 채 잠이 들었다 

소문으로만 출렁거리는 바다 곁에서 

  

이따금 술에 취하면 

담벼락에 어른거리던 나무들의 그림자

나무들의 그림자를 부여잡고

나는 울었다

그러나 이제는 어리석다

사랑은

바다에 가도 만날 수 없고

거리를 방황해도 만날 수 없다

단지 고개를 돌리면

아우성치며 달려드는 시간의 발굽소리

나는 왜 아직도

세속을 떠나지 못했을까

흐린 날에는

목로주점에 앉아

비를 기다리며 술을 마셨다

인생은

비어 있음으로

더욱 아름다워지는 줄도 모르면서




8월, 그 유혹 강순

하얀 백지에 

‘그냥 담쟁이덩굴이 있다’라고 쓴다 

그리고 ‘그냥 한 여자가 담쟁이덩굴 앞에 서 있다’라고 쓴다 

그리고 8월의 햇살이 쏟아져 내리는 한낮 

그냥 담쟁이덩굴 속에 

‘그냥 고개를 조금 젖히고 있다’라고 쓴다 

  

자꾸만 담쟁이덩굴은 종이 밖으로 가지를 뻗어나가고 

그때마다 이파리에선 노오란 햇살이 빈혈처럼 흩날리고 

백지 속의 그녀는 고개를 어느 방향으로 돌릴까 잠시 생각한다 

담쟁이덩굴은 어느덧 내 뇌수의 들판으로 줄기를 뻗고 

  

그냥 담쟁이덩굴을 바라본다 

그냥 담쟁이덩굴 앞에 서 있는 그녀를 바라본다 

그냥 담쟁이덩굴 위로 날리는 8월의 햇살을 바라본다 

그냥 8월의 햇살에 걸려 죽어 가는 영혼을 바라본다




8월 장마 오보영

꼭 

너한테만 내리는 게 아니란다 

  

너만 위해 내리는 건 더더욱 아니란다 

  

아직 날 기다리는 

나무들 있단다 

반겨하며 맞이해줄 

들꽃이 있단다 

  

조금은 네게 

불편할지 몰라도 

너한텐 다소 

넘쳐날지 몰라도




여름일기 이해인

아무리 더워도 덥다고

불평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차라리 땀을 많이 흘리며

내가 여름이 되기로 했습니다

  

일하고 사랑하고

인내하고 용서하며

해 아래 피어나는

삶의 기쁨 속에

  

여름을 더욱 사랑하며

내가 여름이 되기로 했습니다




8월의 노래 정연복

하루하루 찜통더위와

치열하게 싸우면서

  

많이 힘들었는데

어느새 7월이 갔다.

  

태양의 열기

아직은 식을 줄 모르지만

  

이제 한 달만 더 가면

가을의 문턱 9월이다.

  

세월은 바람같이

오고가는 것

  

8월이여 내게로 오라

내 곁에 잠시 머물다 가라.




싱그러운 8월 윤갑수

이글거리는 햇살을 해찰하다 

잡아 먹을듯한 시선에 놀라 

그늘 속으로 숨어버린 7월 


어느새 태양은 절정을 향해 

달음질하니 햇살은 더욱더 부릅뜬 

눈빛으로 세상을 흘긴다. 


가만히 있어도 오그라질 듯 

빗줄기처럼 주르륵 흘러내리는 

한낮의 8월 


녹음이 짙어가는 여름날의 

햇살은 가을을 풍요롭게 함이니 

무덥다 뜨겁다 푸념하지 말자 

여름날 매미의 일생처럼 장고의 

세월을 어둠과 천적으로부터의 

승리한 자의 노래가 혼을 빼듯 

싱그러운 8월이 무르익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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